산너머 산

미국에 이민 가 계셨던 이모님께서 모처럼 한국에 오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예순일곱 생신을 맞으시게 되어 가족과 친지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그러기 나흘 전. 손이 좀 뻣뻣하고 저리시고 행동이 좀 느려진 것 같아서 종합병원에 진료를 보러 가셨는데 담당 의사는 좀 의심되는 게 있다며 일단 입원하고 검진을 하자고 했단다. 한 2박3일은 걸린단다. 무슨 검사가 그리 오래걸리는지 궁금했는데 상황을 들어보니 신경과로 트랜스퍼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략 짐작은 갔지만 설마했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는데 입원이 하루 더 연장되었다.

나흘 간 검사를 받고 퇴원을 하시던 날, 최종 진단이 나왔다. 빨간 직인이 찍힌 진단서에 찍힌 병명은 길지도 않게 딱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파킨슨병. 약이 좋아져서 평생 꾸준히 드시면 건강하게 지내실 수는 있다. 다만 그간 심혈관질환으로 드시던 약 5알, 이번 진단으로 5알. 총 10알을 매 식사 때마다 드셔야 한단다. 약이야 그렇다쳐도 3번의 심혈관 스텐스시술을 해서 산을 넘었다 싶었는데 당신 맘이 편치 않으셨을게다.

저녁이 되어 모처럼 가족 친지들이 다 모여서 당신의 예순일곱 생신을 축하하러 왔는데 모인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편했으랴. 그날 난 스물댓 명이 모인 갈빗집에서 우리 아버지의 아들로서, 어떻게 보면 장남으로서 기쁘게 생신 축하주를 제의했다. 다소 무거워질 수 있는 자리를 띄우기 위해 담담하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주를 여러 병 비웠다.

......

그렇게 삼 주가 흘렀다. 어머니가 위 내시경 검진을 받으러 가셨는데 위에서 혹이 발견되어 떼어냈고 조직 검사를 하셨다. 결과는 일주일 정도 후에 나온다고. 그 동안 잔병치레는 많이 하셨어도 크게 아프신 적은 없으셨는데 이번에도 그저 지나가는 가벼운 잔병 정도이길 바란다.

by KoKIDS | 2009/11/06 16:35 | 일상에 대한 생각들 | 트랙백 | 덧글(1)

습관과 리추얼

Scene #1

오늘처럼 기온이 뚝 떨어진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내게 무우와 오징어 몇 조각을 넣어서 국을 끓여 놓으시고는 저녁에 밥을 챙겨먹으라 내게 이야기를 하시고는 외출하셨다. 누나 둘이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기 전 난 그 국에 들어있는 오징어 몇 조각이 너무나 먹고 싶고 누나들이 오면 내 차지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아 난 오징어만 쏙 건져먹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누나들이 돌아오고 큰 누나가 국을 데우고 밥을 차렸을 무렵, 큰 누나는 국에 오징어가 들어간 거 같은데 어째 오징어가 보이지 않는다며 나를 째려본다. 나는 죽어도 오징어는 없었노라고 이야기하며 손사레를 쳤다.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삼남매가 지냈던 그 함께 보내던 시절이 이렇게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던 때가 되면 문득문득 떠오른다.

Scene #2

아들 녀석은 집안에서 혼자 자란다. 족발이 먹고 싶단다. 중간 크기 하나를 시켜도 세 식구가 다 먹지 못하는데 어쨌든 먹고 싶다니 시키고 남으면 결국 냉장고 행이겠지만 저녁거리로 먹기 시작한다. 뼈에 붙은 살을 발라 먹기엔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살코기부터 먹도록 하기 위해 내가 먼저 뼈부터 먹는다. 아는지 모르는지 이 녀석 내게 '친절하게도' 뼈부터 준다. 아마도 이 녀석은 내가 뼈를 좋아해서 그러는지 알게다. 하지만 다섯 살짜리가 먹어봐야 얼마되지도 않지만 맛있게 먹어주면 다행이겠지만 몇 조각 먹더니 이내 딴 짓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지만 집안에서 '경쟁자'가 없는 녀석인지라 어쩔 수가 없다. 으르고 달래고 혼내도 별 도리는 없다.

Scene #3

어릴 적 양말에 구멍이 났다고 그냥 버리는 적은 없었다. 기워서 신는 건 기본이었다.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생각해 보면 옛날 섬유의 질이 안좋긴 했었지만 요즘 양말은 몇 년을 신어도 구멍이 잘 안난다. 얼마전 아들의 오년 인생에서 삼년을 함께 한 양말에 드디어 구멍이 났다. 기워줄까 하다가 마트에서 기껏해야 천 얼마 하는 걸 기워 신는 게 구차하기도 해서 다음 번에 다시 사주겠노라고 했다. 자꾸 그 때 우리 어머니가 양말을 기워줄 때가 생각나서 일까. 양말을 버리기가 너무 아깝다.
 
Scene #4

옷에서 단추가 떨어지거나 찟어지거나 혹은 아주 심한 정도가 아니면 나는 항상 내가 혼자 달곤 하거나 직접 수선을 한다. 아들 옷도 예외는 아닌데 어제 아들 옷에서 단추가 떨어져서 달아주다가 옛날에 어머니가 단추를 달아주던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철제로 된 동그란 미제 쿠키통에 단추를 잔뜩 모아두시곤 했었는데 나도 결혼한 이후로도 굴러 다니는 단추가 보이면 다 모아두었다가 단추가 떨어지면 비슷한 단추를 찾아서 달아주곤 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씨가 이야기하길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패턴이라고 하면 리추얼은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된다고 한다. 단추를 모아서 달아주던 어머니를 떠올리듯 내 아들도 나중에 내 나이쯤 되서 자신의 아이가 생겼을 때 단추를 달아주는 아버지로 나를 기억할까.

by KoKIDS | 2009/11/02 13:20 | 일상에 대한 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덕유산에서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주말에 비고 오고 나면 주 초에 영하로 기온이 곤두박질 친다고 했다.

가을 단풍이 이제 다음 주면 끝난다는 소식을 덕유산에 있는 무주 리조트 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는 TV를 켜고서 배를 쭉 깔고 누워서 그 지역 방송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들었다. 꼭 그 단풍을 보러 간 건 아니었지만, 설천봉 꼭대기든 향적봉 꼭대기든 애 딸린 유부남이 애를 들처업고 올라갈 수는 없는지라 설천베이스에서 곤돌라를 타고서라도 아니면 중간에 걷다가 포기하고서라도 눈으로 확인하고는 싶었다.

단풍은 멋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날씨는 흐리고 추웠고 무주구천동 올라가기 전 그 자락에 부침개 냄새 진동하고 대학 옥수수라며 삶는 냄새가 나는 그 곳에서, 걸어서 편도 육킬로라니 다섯살 꼬마를 데리고 백련사까지 간다는 건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어쨌거나 산행을 한다는 건 그래도 녀석에겐 생애 첫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린 채 삼분의 일도 안되는 거리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는 아들을 등에 업고 다시 오긴 했지만 덕유산의 단풍은 눈에 한 가득 담고 돌아왔다.

by KoKIDS | 2009/11/02 09:21 | 여행. 보고 느낀 것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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