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해지니 '그'가 왔다

찬바람이 불면,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을에 일조량이 줄어들다보니 심히 우울한 날의 연속이다. 오늘 하루도 잔뜩 찌푸린 것이 날만 더 추우면 눈이라도 펑펑 쏟아질 기세다.

내겐 큰 의미를 지녔던, 그래서 또다른 전환점일 수도 있었던 일을 그르치고는 갑자기 한가해져버렸다. 그랬더니 '그'가 왔다. '그'는 날 우울하게 만든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때로는 좋은 일만 가득한 것처럼 얼굴 표정을 관리하고 있지만 사실 우울함은 날 힘들게 한다.

이사를 나가면서 거울이 필요없게 되서 사무실 책상에 거울을 가져다 놨다. 평소에 거울보는 일이라곤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 손질할 때 밖에 없었는데 책상에 거울을 두니 고개를 돌릴 때마다 얼굴이 비춰진다. 이젠 세월을 느낄 수 있을만치 바뀐 얼굴. 나름대로 반추해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을 산 것 같은데 또 후회가 밀려온다. 삶에 물질적인 안정이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나니 '배부른 자'의 푸념이 나온다. 바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의 빈자리이다.

운전을 하다가 혼잣말하는 횟수가 늘었다. 라디오는 내 친구지만 그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창문은 모두 닫은 채 밀려오는 피곤함을 쫓기 위해 소리도 지르고, 혼잣말도 하며 창 밖의 풍경은 그렇게 흘러간다.

늘 혼자서 몇 시간을 운전하고 가서, 나와의 친분 관계라곤 극도로 자본주의적인 것 밖엔 없는 사람들과 대면하고는, 다시 몇 시간을 운전해서 돌아온 후, 드러누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 어느 한 귀퉁이에 말없이 몸을 누인다. 가끔은 말이 통하는 사람과 아무 말도 없이 혹은 말이 끊어지지 않을만큼 수다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아주 조용하고 편안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싶지만 그러기에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때론 나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들이 보고 싶기에,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에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 난 아마도 그들의 키보드에서 타이핑된 '보고싶다'는 말을 목격하고 싶었을 것이다. 차마 나를 위해 시간을 내달라고 이야기하질 못한다.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요즘 바쁜가"

"심히 바쁘다오"

"고생이시구려"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난 해가 지면 어김없이 나와의 친분 관계라곤 극도로 자본주의적인 것 밖에 없는 사람들과 대면하고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때로는 좋은 일만 가득한 것처럼 얼굴 표정을 관리하고는, 드러누운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곳 어느 한 귀퉁이에 말없이 몸을 누일 것이다.

by KoKIDS | 2006/11/23 16:46 | 일상에 대한 생각들 | 트랙백 | 핑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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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느라 녹초가 되어 있었고, 내 주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갖자고 했다. 아마 그해 9월 29일은 금요일이었으니 일주일 내내 대전에서 우울한 독수공방의 나날을 보내다가 주말이 되자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몰고 막히는 고속도로를 올라오고 있었을 듯 싶다. 졸면서. 2005년 9월 29일. 내 아이. 근희의 백일 ... more

Commented by updong at 2006/11/23 17:41
서울오면 전화해라. 저번처럼 술한잔 하자
Commented by 정환 at 2006/11/24 16:39
updong // 나도 사줘......
kokids // 누울때없음집에와서누워도 흠흠..
Commented by 피스 at 2006/11/27 01:34
오래간 만이네....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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