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에서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주말에 비고 오고 나면 주 초에 영하로 기온이 곤두박질 친다고 했다.

가을 단풍이 이제 다음 주면 끝난다는 소식을 덕유산에 있는 무주 리조트 방 한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는 TV를 켜고서 배를 쭉 깔고 누워서 그 지역 방송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들었다. 꼭 그 단풍을 보러 간 건 아니었지만, 설천봉 꼭대기든 향적봉 꼭대기든 애 딸린 유부남이 애를 들처업고 올라갈 수는 없는지라 설천베이스에서 곤돌라를 타고서라도 아니면 중간에 걷다가 포기하고서라도 눈으로 확인하고는 싶었다.

단풍은 멋드러지게 피어있었다. 날씨는 흐리고 추웠고 무주구천동 올라가기 전 그 자락에 부침개 냄새 진동하고 대학 옥수수라며 삶는 냄새가 나는 그 곳에서, 걸어서 편도 육킬로라니 다섯살 꼬마를 데리고 백련사까지 간다는 건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어쨌거나 산행을 한다는 건 그래도 녀석에겐 생애 첫 즐거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린 채 삼분의 일도 안되는 거리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는 아들을 등에 업고 다시 오긴 했지만 덕유산의 단풍은 눈에 한 가득 담고 돌아왔다.

by KoKIDS | 2009/11/02 09:21 | 여행. 보고 느낀 것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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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간서치 at 2009/11/02 14:05
기행문을 길게 한번 써보셔도 재밌겠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말없이 오간 그 눈빛과 웃음? 뭐 이런것도 상상이 가는데요.
Commented by KoKIDS at 2009/11/02 14:45
간서치 / 가뜩이나 제 블로그에는 사진이 없는데 사진없는 기행문 쓰다보면 만연체라서 아마 재미 되게 없을 거예요. 히힛. :-)
Commented by 간서치 at 2009/11/02 21:25
일상에서 벌어진 사소한 일들을 이렇게 맛깔나게 쓰시니 글을 자주 보게 됩니다. 위에 쓰신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도 재미도 있고 생각도 하게 하네요. 저처럼 서평이나 쓴다고 무미건조한 블로그보다 항상 따뜻함이 있네요.
Commented by KoKIDS at 2009/11/03 14:00
간서치 / 과찬이 담뿍 담긴 훈훈한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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