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날이 추워지는 초가을. 나이드신 어른들은 이 시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들 한다. 고혈압, 당뇨로 이어지는 합병증, 갑자기 드는 찬바람에 중풍이 오기도 하고 몸 약하신 어른들은 저세상으로 가는 일이 매우 잦다. 그래서 그런지 와이프의 휴대폰은 주말에도 몇 건씩 부고를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온다. 같은 직장을 다니는 사우들의 부모님들, 어른들 부고가 주말에도 몇 건씩 들린다는 건 그다지 좋은 건 아니지만 요근래들어 많이 울리는 걸 보니 아마도 찬바람이 건강에 가져다주는 영향은 큰 모양이다.



찬바람이나 계절이 항상 나이든 어르신들에게만 있으랴. 3주전부터 시작한 수영. 이 수영에서 시작된(아니면 잠재되었다가 수영을 통해 발현된) 두통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10월 초에 수영을 시작한 이후 그렇게 힘들다거나 힘에 겹다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수영을 시작한지 2주째쯤부터 두통이 잦아지더니 지금은 25m 수영장의 절반을 헤엄쳐가기만 하면 그 어떤 수영자세라도 뒷골부터 시작되어 관자놀이 부분까지 아파오는 두통에 헤어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처음에는 운동을 너무 심하게 했으려니, 찬물에서 감기 기운이 있으려니 했었는데 아픈 것이 보통이 아니다. 고심끝에 수영장을 나와 병원에 갔다. 자전거나 조깅을 할 때에는 전혀 그런 증상이 없었는데 수영에서만 그리 아픕디다...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심각한 건 아니니 일단 타이레놀 ER을 처방해 드릴 터이니 수영 전에 드시고 수영해 보세요...

이제 갓 레지던트를 마친 것 같은 여자 의사 선생님은 밖에 나가 약국에서 사는 것보다는 싸니 처방받아서 사시라고 처방전을 뽑아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머리가 무거운 증상이 계속되어 쉬면서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양치질을 하러 화장실에 갔는데, 우연히 양치질하다가 구역질이 좀 났는데 그 이후로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아... 이제 내가 이렇게 죽나보구나...' 하면서 자세를 가다듬고 처방받은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좀 나아졌지만 시험보러 가서도 무거운 머리에 고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시험이 끝나고 내리 3일을 쉬었다. 몸살 기운일 수도 있고, 그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원없이 자고 원없이 먹고 푹 쉬었다가 다시 한 주의 시작 월요일.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수영을 갔다. 이번에는 진통제 한알을 먹고 수영을 하러 갔다.

좀 나아지려나... 안타깝게도 난 25m 수영장의 딱 절반만을 간 후 밀려오는 두통에 5분만에 수영장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문도 열지 않은 병원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박주연님~ 들어오세요~"

약간 나이들어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의 부름. 비싼 돈 주고 특진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일반 진료를 받으니 매번 의사 선생님이 바뀐다. 이번엔 서른 중반은 넘어보이는 남자 선생님.

차트를 보니 심각해 보이진 않네요... 젊으신 분이... 혹시 물에 대한 공포는 있으십니까... 아뇨... 사라졌어요... 오히려 물에 대한 공포가 사라진 후에 두통이 나타났어요... 수영을 힘줘서 하나요... 아닌 것 같은데요... 결혼하셨습니까... 네... 혹시 아주머니(-_-)와 별 문제는 없으신가요... 아하핫... 결혼한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 문제는요 뭘... 직업이 무엇이신가요... 프로그래멉니다. 아 컴퓨터 관련 일 하시는군요... 스트레스 많이 받고 그러시나요... 글쎄요.. 근래 시험이라 좀 그런 건 있었군요... 흠....

이번엔 약을 바꿔보자고 했다. 타이레놀은 한 가지 성분으로 되어 있어 지금 내 증상에는 잘 안맞는 것 같다며 진통제 종류를 바꾼다고 했다. 그리고 반토막짜리 약물을 더 집어넣는데 혹시 졸리면 그건 먹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처방전을 내밀었다.

약국에서 약을 사들고 들어와서 도대체 내가 먹는 약이 무슨 성분인지 찾아봤더니 하나는 강력한 진통제이고 나머지 하나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_-; 얼마나 강력한 진통제인가 했더니 정형외과 환자들(다리 부러지고 팔 부러지고 등등)이 수술 후 진통제를 보통 모르핀 같은 마약 성분 주사를 사용하는데 이게 좀 쎄단다... 그런데 지금 내가 먹는 이 진통제를 동일 정형외과 환자들에게 사용했더니 이 모르핀 주사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나... 결론적으로 아주 훌륭한(?) 진통제임엔 틀림없다. 나머지 반토막짜리 향정신성의약품은 공황장애치료제, 항우울제 등으로 쓰이는 거랜다. 누군가 우스개 소리로 이 약에 대해 설명하길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자기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할 때 간호사나 의사가 걱정하지 말고 이 약 먹고 자라고 할 때 주는 약'이랜다. 불안 증상을 없애주는 정신과적 약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의사 선생님은 많이 아프다고 하니 좀 강한 진통제를 주고, 수영할 때에 주로 나타난다고 하니 수영 등에서 나타나는 공포증, 불안 증상을 없애보기 위해 처방한 듯 하다. 그런데 알고 나니 영 그렇다. -_-;

어쨌든 그 약의 성능은 좋은 것 같다. 당장 무겁던 머리가 가벼워졌고 좀 나른해지긴 했지만 사는데 큰 지장은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내일쯤 약 먹고 다시 수영해봐야 겠다.

좀 찾아보니 고혈압과 두통은 별 관련이 없다고 한다. 오늘 혈압을 재니 꽤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는데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런 문제는 아닌 듯 했다. 나와 같은 두통을 양성 두통이라 한다는데 악성 두통에 비해 나쁘진 않다고 한다.

좀 지내봐야 겠다.

by KoKIDS | 2004/10/25 23:25 | 일상에 대한 생각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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